[윤태기역사칼럼] 태권도의 리더십, 두 성인에게서 배워야
[윤태기역사칼럼] 태권도의 리더십, 두 성인에게서 배워야
  • 태권도타임즈
  • 승인 2014.09.0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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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윤태기역사칼럼]태권도의 리더십, 두 성인에게서 배워야
 
 
 
8월의 한국은 두 인물의 리더십으로 인해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가슴에 아련함을 주었다.
 
한 사람은 영화 ‘명량’의 주인공 이순신 장군이고, 다른 한 사람은 8월14일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영화 명량은 개봉 21일 만에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1500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이더니 ‘아바타’를 넘어 흥행 1위 자리에 한국영화가 차지하는 기적과 같은 일을 만들어 냈다. 이 뿐만이 아니라 국내는 물론 미국을 넘어 일본에까지 ‘명량’ 인기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절박한 위기에서 임금이 아닌 백성을 위한 충성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적과 맞서고자 했던 이순신의 선택과 용기가 오늘 우리의 역사와 민족을 있게 한 것이다.
 
이순신의 솔선수범으로 행동하는 리더십은 그 무엇보다 위기에 빠져있는 국가뿐 아니라 태권도에도 가장 시급히 받아들여야 할 리더십이다.
 
‘아이에게 손가락을 물리는 교황’, 그곳에는 어떤 권위도 위엄도 없는, 그저 인자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이는 엄마의 젖가슴 대신 손가락을 물린 모성 가득한 엄마의 모습으로 아이의 갈증을 풀어 주고 싶은 교황의 행위예술이었다. 교황의 손가락은 참으로 숱한 말들을 대신하며 고통 받는 사람에게 위로를 전하는 교황의 상징 언어였다. 교황의 손가락에서 젖이 나오지 않겠지만 젖을 주고 싶어 하는 교황의 마음만은 기적보다 크게 다가온다.
 
교황은 최고의 종교 지도자라는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대화를 나눴다. 세월호 유족들의 손을 잡아주고, 장애인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는 모습 등에서 소통은 언어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나고 이해하는 것임을 보여줬다. 바로 마음을 열지 않는 대화는 독백일 뿐이라는 것이다. 마음으로 몸으로 행하는 교황의 리더십은 도(道)를 가르친다는 입장에서 보면 종교를 떠나 태권도라는 무도(武道)를 끌고 나가는 소위 제도권의 위선자들이 느껴야 할 덕목 중 하나일 것이다.
 
성인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리더십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행동을 제정함에는 결코 사회에서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지 않는다. 반드시 천지자연과 인간 세상의 관계가 서로 부합하게 하고 실제에 근거하여 행동을 도출해내야 만이 후에 법칙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게 되며 후대에까지 전할 수 있다.
 
즉 지식은 성인들이 학습해서 얻은 것과 자기가 직접 몸으로 체득한 것 둘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성인들이 행하는 일체의 행동은 모두가 다른 사람이나 자신의 객관사물을 관찰하고 헤아린 기초 위에서 마음으로 생각해서 얻어낸 것이다. 이런 리더십은 모두 객관적인 실재와 일치한다.
 
‘비교’란 대상들 사이에서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고찰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일에는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또 같은 점에도 차이점이 있으며, 다른 점들에도 같은 점이 있다. 우리는 두 성인의 리더십을 통해 태권도 리더들과 비교 분석한 후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인식하여야 한다. ‘알면 강해지고, 모르면 노쇠해진다’는 말과 같이 지혜로운 이는 같음을 보고, 어리석은 이는 다름을 본다. 어리석은 자는 부족하고, 지혜로운 자는 남음이 있다.
 
사람의 몸도 본래 같은 모양이지만 호흡과 (天氣) 섭생(地氣)의 도리를 알고 모름의 차이로 인해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바로 ‘건강한 몸’과 ‘아픔의 몸’을 갖는다는 것이다. 필자 정도 나이(50 후반)의 태권도를 열심히 수련 하셨던 분들 대부분은 많은 고통의 몸을 갖고들 있다. 호흡과(天氣) 섭생(地氣)의 도리를 아는 사람은 건강하고, 알지 못하는 사람은 늙기도 전에 쇠약해 진다.
 
처음의 같음과 다름을 비교함으로써 지(知)와 무지(無知)가 달리하듯이 태권도 리더자들의 덕목도 바로 우리 몸 안의 법칙과 같다. 
 
역사를 보거나 주변을 둘러봐도 결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멋지게 사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스티븐 호킹 박사도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22살에 온몸이 점점 굳어가는 루게릭병에 걸렸다. 그는 1~2년 안에 사망한다는 진단을 받고도 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인생은 오히려 루게릭병 발병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휠체어에 앉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그에게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주었다.
 
세계적인 우주물리학자로 거듭난 그는 보편적으로 결점이라 치부되는 것들이 결코 우리의 인생을 흔들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평범한 우리의 이웃도 있다. 1년 10억 이상의 유명 스타강사 유수연, SKY대 출신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여자의 몸으로 학교생활에서는 눈에 띄는 것 하나 없던 그녀가 지금 대한민국의 몇 십억의 스타강사가 된 이유는 자신의 장·단점을 알고 찾아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자연 현상의 시각으로 보면 결코 특수한 경우가 아니다. 자연은 불필요한 결점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그것의 쓰임을 모르고 결점이라고 부르며 극복할 대상으로 생각할 뿐이다. 살아있는 우리는 저마다 특징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어떤 것이든 스스로 원하는 대로 완성해 나갈 수 있다. 우리가 ‘완성’이 아닌 ‘성공’만을 추구하니까 안 되는 것이다. ‘성공’이 아닌 ‘완성’으로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 또한 성공만을 찾았기 때문에 한 때는 성공하는 듯이 보였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끊임없이 다른 가치의 태권도를 찾게 되었던 것이다. 핵심은 ‘열심히’가 아니라 ‘무엇을’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태권도의 지도자는 ‘指導者’가 아니라 ‘知道者’다. 즉 ‘태권도의 길을 아는 사람’이다. 태권도에도 많은 길이 있고, 길마다 의미가 있으며, 모든 길이 다 필요하다. 어느 길이 좋은 길이고 어느 길이 최고의 길이라는 판단은 사람마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기 태권도와 무도 태권도의 이원화는 하루 빨리 필요하다.
 
필자는 기(氣)수련을 하며 느끼는 것이 필자는 단순한 전달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오고 있는 한민족과 자연의 비밀을 그저 전달해 주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초석이 될 뿐이다.  
 
행동하는 양심, 말보다는 몸으로 보이는 리더십, 이순신 장군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준 리더십은 태권도에 만연한 이기주의적 보신주의가 하루빨리 느끼고 배워야 할 덕목이다. 즉, 자리가 아닌 태권도를 먼저 생각하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찾아 스스로 행동하는 그런 리더자가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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