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기 역사칼럼] 태권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
[윤태기 역사칼럼] 태권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
  • 태권도타임즈
  • 승인 2013.10.0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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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기 역사칼럼] 
태권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
최초의 펭귄
펭귄 어워드
실패 정복자
태권도
 
 
 
 
추석 연휴, 우연히 신문을 보다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했다. 실패를 통한 교훈을 준 실패자에게 주는 상에 대한 기사였다. (2013년 9월 22일 동아일보 1면기사)
 
“용기 있는 펭귄이 먼저 바다에 뛰어든다.”는 말이 있다.
남극의 펭귄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무리지어 다니는 펭귄들은 먹이를 구하려고 바다로 뛰어들 때가 되면 모두가 머뭇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다표범이나 범고래 같은 천적이 두려워서 그렇단다.
   
하지만 용감한 펭귄 한 마리가 먼저 바다로 뛰어들면 일제히 다른 펭귄들도 따라 뛰어든다. 이처럼 조직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펭귄을『(The First Penguin)』이라 부른다. 비록 천적에게 잡아먹혀 실패할 수도 있지만 다른 펭귄들에게 도전 정신을 불러 넣는 역할자체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펭귄뿐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는 이런 희생의 도전 정신이 같은 무리가 살아남게 만드는 원동력을 가져다 준다.
아프리카 초원, 군집 생활을 하는 초식동물(사슴, 누우 등)들에게는 우기를 지나 건기가 오게 되면 고난의 시간이 다가온다. 군집생활로 인해 한 지역의 풀을 다 먹어치우게 되면 또 다른 초지를 찾아 이동을 하게 된다. 때론 강 건너 초지를 찾아 강을 넘게 된다. 그러나 강 속에는악어들이 강을 건너는 그들을 노리고 있다.
 
이 때 그 무리들은 강가에 멈춰 강 건너기를 주저하다 무리 중 한 마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게 되면 모두가 강을 건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비록 천적에
게 잡아먹혀 실패할 수도 있지만 다른 동료들에게 도전 정신을 불어 넣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업에도 이런 용감한 사람들이 있다. 최근 이러한 실패자들을 찾아내 시상하고 공개적으로 축하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패하더라도 결코 부끄러워하지 말고 반드시 그 원인을 분석해 동료들과 공유함으로‘성공보다 가치 있는 실패’를 즐기라는 의미일 것이다.
 
지난 13일 경기도 화성에 있는 한국 3M의 기술연구소 강당에는 김치득 연구소장과 150여 명의 연구원 전원이 모였다. 이 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시상식인『』가 열리는 날이었다.
 
2003년 제정된『펭귄 어워드』는 한국 3M 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 ‘포스트잇’과‘습윤 밴드’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것은 접착제와 반창고를 만들려다 실패한 뒤 탄생한 작품이다.
 
이곳 연구원들은 ‘실패에서 배운다’는 교훈을 항상 마음에 새기는 이유다. 수상자에게는 인사평가에 가점을 주고, 주차장 한 칸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권한을 준다.
   
  
이날 펭귄상을 받은 허은광 연구원은 “개발자로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실패”라며 “연구 결과가 실제 수익으로 이루어지려면 시장 상황과 납품체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대비한 플랜 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인 포스코나 삼성 등 많은 기업에서도 실패를 통해 새로움을 찾고자 하는 노력들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창조적 기업은 실패를 독려하며, 실패로부터 배운 구체적 전략을 실천하는『』”라고 분석하고 있기도 하다.
 
펭귄의 예나 동물의 예에서 보았듯이 세상은 멈춤이 있지 않고 계속 움직임의 연속이다.
 
세상은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다.
 
그런데 유독 『』만은 예외인 듯하다.
그것이 오늘날 태권도 위기를 불러온 요인 중 제일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태권도』라는 개념에 익숙하고 이론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태권도를 종종 진리로 간주한다.
 
그래서 변하고 있는 태권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태권도』라는 고정된 관념에 집중해서『변하고자 하는 태권도』를 기존의 태권도를 가지고 변하고자 하는 태권도를 관리하려고 하고 있다.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은 종종 태권도의 세계를 조그만 구멍이 나있는 대롱으로 보면서도, 전체를 본 듯이 설명할 수 있다고 허풍을 떠는 것과 같다.
 
그러다 보니 전문가라는 분들은 태권도를 발전시키는데 별 역할을 못하고 있기도 하다. 오히려 자기가 가지고 있는 태권도라는 이론의 틀을 진리로 확신하며 변하고자 하는 태권도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런 사람들이 태권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모든 문제를 지금의 조건에서만 해석하려 하기 때문이다. 태권도의 조건들이 달라진다는 사실도 받아들이지 않고, 또 지금의 조건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예측할 동력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태권도를 발전시키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이론가나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변화를 실천하는 실천가들이고 행동가들이다.
 
전문가들이 자기만의 경색된 이론의 틀로 행동가들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은 행동가들에게 사용되고 활용되어야 한다. 실천가나 행동가들은 변하는 태권도에 집중한다.
 
태권도의 발전된 미래를 위해서는 수준 높은 이론가들 보다는 수준 높은 행동가들이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태권도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다. 그래서『내공』있는 행동가들이 역사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그런 사람들이 이론가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면서 미래 지향적으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태권도를 중심에 놓고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 태권도에 관해서 이해만 하고 적절한 예측을 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태권도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새롭게 변화되는 태권도를 만나서 거기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창조해 내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기존의 태권도를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태권도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아는 것을 근거로 하여 우리에게 아직 열려져 있지 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태권도는 우리에게 뿌리로 가능하지 않고 날개로 가능할 것이다. 한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날아갈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태권도는 태권도라는 고유 명사가 아니라 태권도라는 움직이는 동사와 같은 태권도가 되어야 한다. 이 사회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공자님도『논어(論語)』의「자로(子路)」편에서 “『시경(詩經)』에 나오는 시 삼백수를 모두 외웠다고 해서 그에게 조그만 정치적 사안을 맡겨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외국에 사신으로 가서도 혼자 응대할 수 없다면, 아무리 시를 많이 외웠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일갈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예측할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은 태권도가 『공방의 원리』라는 고정 관념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태권도에도 동물의 예에서 보듯 도전과 희생의 행동가들이 필요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행동하는 미래의 혜안, 정체되어 있는 태권도에 가장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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