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기 역사칼럼] 승품·단 심사를 보며⋯, 왜 일까?
[윤태기 역사칼럼] 승품·단 심사를 보며⋯, 왜 일까?
  • 태권도타임즈
  • 승인 2013.07.0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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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품·단 심사를 보며⋯,  왜 일까?
피타고라스는 무엇을 발견했나?
하늘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그러면, 왜 기(氣)수련 인가?



필자는 실로 오랜만에 태권도 심사장에서 승품, 단 심사 평가위원으로 참여하여 심사 채점을 하게 되었다. 심사 대상 인원은 대략 1천 3백여 명으로 대부분 어린 아이들이었으며, 그 중 단심사에 응심한 인원은 극소수(20여 명)였다. 그들 중 대부분은 중고생이었으며 성인은 몇 명에 불과 하였다.

국기 태권도로 모든 국민들에게 사랑받아야 할 태권도가 어찌하여 이 같은 현상에 매어 있으며, 왜 이토록 어린아이를 제외한 수련생이 없는 것일까?  무엇이 문제일까? 곰곰이 그 원인을 생각해 봤다.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바라봤다. 하지만 서울의 하늘은 요란한 불빛 때문에 별을 볼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서울 교외로 차를 몰고 나갔다. 한참을 달려 하늘이 훤히 열린 고개턱 위에 올라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별이 어릴 적 보았던 별과 달리 반짝 거리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숨을 막히게 하는 도시의 희뿌연 뚜껑을 걷어내 버리니 이제야 예전에 보았던 하늘이 보인다.

별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그 까만 하늘, 그 까만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려올 것 같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두 발로 설 수 있게 만든 건, 별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자주 별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와 다른 느낌을 가지고⋯, 별들을 보았을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게 피타고라스학파는 학파라기보다는 오르페우스교라는 신비주의 신앙을 가진 하나의 종교집단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매우 엄격한 종교적 계율을 지켰고, 무엇보다 영혼의 윤회를 믿었다. 피타고라스가 살았던 시대, 그리스에서는 막 철학적 사유가 생겨나고 있었다.

피타고라스는 세상의 모든 것을 수(數)로 표시 하였다. 수를 갖지 않은 사물은 없다고 믿었다. 수는 모든 것에 앞서 존재하며 혼돈의 세계에 질서를 주고 형체가 없는 것에 형상을 준다. 따라서 수를 연구하는 게 존재의 가장 깊은 비밀을 탐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피타고라스가 신봉하던 오르페우스는 서양 최초의 음악가였다. 때문에 피타고라스 교단이 음악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음악에서도 수적 비례를 찾아냈다. 음의 높이는 현(絃) 길이의 비례관계로 설명했다. 현의 길이를 3분의 1 줄이면 음은 정확히 5도 올라가고, 반으로 줄이면 한 옥타브 올라간다. 여러 음사이의 수적 비례는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낸다.

이 신비주의자들이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신비를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하늘에도 수의 조화가 지배하고 있을 것이며, 별도 예정된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일정한 시간에 나타나 일정한 시간에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별의 움직임은 리드미컬한 춤이 되었다. 재미있게도 그들은 별들이 현악기 속에 각자의 음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마침내 밤하늘엔 춤추는 별들이 어우러져 장엄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이처럼 아득한 옛날,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와는 다른 태도로 자연과 세계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에 생명이 있다고 믿었고, 그 생명들과 언제든지 교감할 수 있었다. 무정한 밤하늘에서 조차 그들은 별들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그림을 보았고, 별들이 연주하는 장엄한 음악을 들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불행하게도 세계를 그렇게 느끼기를 그만두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놀랍게도 우리 몸의 한구석엔 고대인들의 심성이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에겐 아직도 그들처럼 세계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살아있다. 바로 기(氣)의 세계이다. 

     

위의 밤하늘 사진은 카메라 셔터를 장타임에 놓고 촬영한 것이다. 사진에서와 같이 별들의 궤도를 추적해 보면 볼텍스(회전)의 궤적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우주의 자기장에 의해 기(氣)가 온 우주에도 흐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 자기장의 기(氣)는 우주뿐 아니라 지구에도 흐르고 있으며, 소우주라는 우리의 몸에서도 알게 모르게 한시도 흐름의 끊김이 없이 일어나고 있다.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국기이다.
국기 태권도가 진정한 우리의 국기로써 바로서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의 맥을 찾아야 한다. 태권도가 다른 스포츠나 무도와 다른 순수 우리만의 정신과 수련법이 되살아나야 한다.

도교의 음양오행이 아닌 선도의 삼원오행으로, 아니 철학적인 것은 차치하고라도 수련법이라도 하루 빨리 찾아야 한다.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손과 발과 몸의 움직이는 동작이 현재의 태권도와는 다르게 기운이 동작에 실려야 한다.

왜 태권도의 자세와 동작이 변해야 하는가는 기(氣)의 운용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다. 태권도 수련을 통하여 축적된 기(氣)가 인체의 경맥을 통하여 원활히 흐르게 한다는 것은 건강뿐 아니라 타격의 강도를 높이는데 있다. 즉 태권도의 동작이 무(武)와 기(氣)가 접합되어 일치되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이 무심(無心)⋅무념(無念)의 상태에서 우주 자연과 하나 될 때 기(氣)는 막힘없이 인체와 동화되어 흐르게 된다. 무심⋅무념이 되려면 전통의 선도기공(仙道氣功) 수련법인 지감(止感)⋅조식(調息)⋅금촉(禁觸)으로만이 가능하다. 이런 상태가 되려면 호흡부터 고요해져야 한다. 호흡이 고요해지려면 숨을 고르게 쉬어야 하고, 숨을 고르게 쉬려면 단전을 의식하여  숨이 깊어지게 해야 한다. 이 같은 수련이 계속될 때 모든 잡념과 집착에서 벗어나 몸과 뇌가 이완되게 되며 우주 자연의 기(氣)가 우리 인체와 동화되어 기운이 온 몸으로 소통되게 된다.

그로인해 건강 또한 자연히 따라오게 되어 있다. 이 수련법만이 성인들을 태권도로 불러들일 수 있다. 외공 위주로 수련되어지는 지금의 태권도에 내공의 수련법이 접목되어 질 때, 성인들 또한 스스로 태권도의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태권도협회나 각 산하 단체 혹은 각 기관에서 성인 활성화라는 미명아래 여러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나타나는 결과를 보면 생각과 달리 소기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는 바로 우리 전통 수련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서 그 답을 찾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밤하늘의 별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판단이다. 하지만 태권도가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운동이 되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깊은 성찰의 고민을 해보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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