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규칼럼>⑤ 은행나무에서 배워야 할 태권도계 수장들
<박완규칼럼>⑤ 은행나무에서 배워야 할 태권도계 수장들
  • 태권도타임즈
  • 승인 2012.12.0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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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에서 배워야 할 태권도계 수장들

<박완규칼럼>⑤
 


무릇, 어느 나무나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든다. 색깔이 달라서 그렇지 봄부터 달고 살던 무거운 잎을 하나씩 둘씩 자기만의 색으로 물들이고 있다가, 바람이 불면 떨어뜨리고 시간이 되면 또 떨어뜨린다.
 

어느 나무고 아름답지 않은 게 없다. 붉은색, 보라색, 주황색, 노랑색, 남색 등 그 종류도 가지가지다. 어디 사람이 말과 글로 표현할 범위에만 그 색이 있으랴. 그것을 백 배 천 배 뛰어넘는 수많은 색깔로 온 산야를 물들이는 것이 나무들의 모습이다.
 
어쩌면 저물어가는 한 해가 하도 아쉬워서 좀 위로를 받으라고 그러는지도 모른다. 힘들고 피곤한 인생들을 가는 세월 속에 그냥 두기 안타까워서 잠깐 기쁨을 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단풍 든 잎들이 처신하는 게 다 다르다.
 
우선 바람이 강하게 불어도 떨어지지 않는 게 있다. 그 쇠털 같은 시간을 그 곳에서 살아왔으면서도 떠나기 싫은 것이다. 악착같이 살았던 그 곳에 미련이 남았나 보다. 어떻게 일군 삶이었는데 두고 떠날 수 있는가, 여름날의 강한 햇빛과 폭풍우도 이겼는데 이까짓 가을날 바람쯤이야 능히 견디리라 하는 옹골찬 다짐이 보인다.
 
다음은 다른 동료들이 다 떠났는데도 남아있기를 결심하는 잎이 있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와도 마냥 죽치고 있다. 때가 되었는데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은행잎은 그렇지 않다. 가을이 됐다 싶으면 갑자기 샛노란 옷으로 갈아입고는 세상을 환하게 해 준다. 칙칙하고 슬프고 늘어진 가을을 밝고 기쁘고 팽팽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다가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우수수 소리 내어 떨어진다. 그 많은 잎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둘러 떠난다. 그러다가 마지막 몇 개 미련 떨다 남은 잎도 때가 되면 일제히 떨어진다. 미련 없이 떠나고 만다.
 
자기의 할 일을 다 했으면 떠나야 할 것을 안다. 좀 서운하고 아쉬워도 홱 돌아서서 떠나야 하는 것임을 아는 나무다. 그토록 황금빛으로 찬란히 자신과 주변을 물들이고 밝히다가 때가 되면 다 던지고 마는 품격이 우아하다. 떠벌리며 자랑하려고 다른 나무로 가는 것도 아니고 멀리 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낮은 땅 위로 쌓이고 또 쌓인다. 이래서 몸통은 비록 벌거벗어 쓸쓸하지만 발 밑은 풍요롭다. 그 곳에서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할 것이다. 제 한 몸 다 바쳐 또 미련 없이 푹푹 썩을 것이다.
 
왜 이전 삶이 그립지 않을까마는 단절이 필요할 때 발휘할 줄 아는 나무다. 왜 그동안 쌓은 치적을 자랑하고 싶지 않을까마는 겸손이 필요할 때 실천할 줄 아는 나무다. 왜 낮아지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마는 용기가 필요할 때 결단할 줄 아는 나무다.

김주훈 국기원 이사장, 강원식 국기원장, 홍준표 대한태권도협회장, 임윤택 서울시태권도협회장 등 우리 태권도계를 대표하는 단체의 수장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더는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떠나야 할 때를 알았으면 싶다. 지지부진하며 머뭇머뭇하는 그런 태도를 제발 버렸으면 좋겠다. 물러날 때를 알고 결단을 내려주면 오죽 좋겠는가.

이들에게, 결단을 못 내리겠거든 기꺼이 그렇게 살고 있는 주변의 은행나무에게 고개 숙여 자문을 구하라고 권하고 싶다. 미련을 훌훌 털고 떠날 때 당신도 데려가 달라고.

그러면 그동안 살았던 모습은 구차했어도 뒷끝은 좀 깨끗해지지 않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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