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봉공화국 대통령경호실장 박상철 사범
가봉공화국 대통령경호실장 박상철 사범
  • 태권도타임즈
  • 승인 2014.03.3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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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공후사의 정신으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습니다 -

▲ 아프리카 땅을 밟게 된 계기는

▲ 대통령 경호실장까지 되었는데

▲ 태권도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 가봉에서 태권도를 지도하고 있는데


▲ 태권도인으로서 보람은

▲ 가봉 한인회장을 맡고 있는데
 
 
 
가봉 공화국은 우리나라의 약 2.5배에 달하는 면적에 인구는 약 150만에 불과한 소국이지만 천연자원이 매우 풍부한 나라 중의 하나로 최근 들어 아프리카 대륙의 경제 기적을 일으키고 있는 나라이다.
30여 년 전 정파 사범으로 가봉공화국에 첫발을 내디뎌 태권도 사범에서 가봉공화국 대통령 경호실장에 오른 박상철 사범(61세, 8단)에게 그의 인생과 태권도에 대해 들어보았다.
 
 
 
▲박상철사범(가봉 대통령 경호실장)
 
 
△ 21살 때인 1972년부터 미군 부대의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1984년 해외개발공사가 가봉에 파견할 경호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선뜻 지원했다. 당시 최종 합격자는 4명이었지만,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출국을 포기하는 바람에 같은 해 2월 9일 혼자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에 도착했다.
당시만 해도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생소한 땅이었고 이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 열망이 컸기에 도전하게 되었다. 사실 당시 경호원 모집 공고가 났을 때 가봉이 어떤 나라인지 전혀 몰랐고 외국에 나가본 경험도 없었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고, 태권도에 대한 자부심이 컸기에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두고 홀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대통령 경호실에 처음 배치됐을 당시에는 80여 명의 경호원 가운데 절반이 프랑스인이었다. 이들은 키가 167㎝에 불과한 나를 깔보기 일쑤였지만 태권도를 수련한 한국인 특유의 성실성과 태권도에서 배운 인내와 끈기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이 바탕이 되어 이를 극복하고 상황을 역전시켰다.
성실히 훈련에 참여하고 공용어인 불어 공부에 매진하는 한편, 가봉 경호원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결국, 태권도는 경호실의 무술이 되었다.
처음으로 독자적인 경호를 맡은 이는 당시 오마르 봉고 대통령의 장남이자 현 대통령인 알리 봉고였는데, 봉고 대통령의 프랑스 유학시절부터 경호를 맡기 시작해 그가 외무장관, 국방장관 등 정부 요직을 거치는 지난 26년간 곁을 지키다가 알리 봉고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대통령 경호실장이 되었다.
 
△ 경기도 인천 강화에서 태어나 의정부에서 살았는데 초등학교 시절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운동화를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 꿈을 접어야 했다. 그 후, 15살 때 미군 부대에서 나온 밀가루 포대로 어머님께서 직접 지어준 도복을 입고 태권도에 입문하였다.
당시 의정부 주위의 가난한 청소년들이 모여 무료로 태권도를 배우는 도장이 있었는데 처음 접한 태권도의 절도 있는 동작과 화려한 발차기에 매료되어 태권도 인생이 시작되었다.
 
△ 어린 시절 내게 태권도를 지도해 주셨던 사부님이 그러했듯이 나도 가봉의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태권도를 무료로 지도하고 있다.
가봉 정착 초기부터 주말을 이용해 태권도 보급에도 힘썼다.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태권도를 무료로 가르치고 1년에 한 번 한국에 다녀올 때는 사비로 도복과 각종 훈련 도구들을 사서 나눠주었으며, 또 2천여 명이 참가하는 태권도대회인 ‘박상철 챌린지’를 세 차례 개최하기도 했다.
이때 뿌린 태권도가 결실을 맺어 2001년에는 군인들의 훈련과목에 태권도가 포함됐고, 작년 9월에는 대통령 지시로 태권도 전용 체육관도 문을 열었다.
지금은 학교 정규교과 과정에 태권도가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 (사진 위)  알리벤 봉고 온딤바 가봉공화국 대통령(우)을 경호실장 박상철 사범(좌)이 근접경호를
    하고 있다. (사진 아래) 정파 사범 출신의 정만순 국기원장과 정파 사범 출신으로 가봉공화국의
    대통령경호실장이 된 박상철 사범이 국기원에서 만나 정담을 나누었다
 
 
△  ‘5년만 버텨보자’던 것이 벌써 25년이 지났다. 중년이 된 지금도 태권도는 여전히 나의 삶이자 희망이다. 가봉에 태권도를 더 널리 전파하는 일이 인생의 목표가 됐고, 태권도는 한국과 가봉 사이의 끈끈한 연결고리가 됐다.
대통령 경호실장이기 이전에 나의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 된 태권도가 가봉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무도로서, 스포츠로서 자리 잡은 모습에 가슴 한가득 자부심이 느껴진다.
내 힘이 닫는 데까지 모국인 한국과 제2의 모국이라 할 수 있는 가봉공화국이 함께 발전해 나가는 상생의 길을 찾도록 노력할 것이다.
대통령 경호 실장으로서 2010년 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때 경호 책임자로 고국 땅을 밟으니 참으로 뿌듯했었다. 체력과 상황이 허락한다면 앞으로 7년 정도 더 대통령을 경호할 것이고, 이후에도 태권도인으로서의 삶은 지속될 것이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가봉 땅에 내 이름이 들어간「박상철체육관」을 짓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다.
 
△ 1980년대 가봉에서 한국기업이 현대식 백화점을 짓는 등 과거 한국기업들의 투자가 활발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교민과 한국기업의 발길이 뜸해지고 규모가 축소되는 동안에 중국기업들이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많은 사업을 수주하고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세계열강들이 블루오션으로 인식하고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가봉은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교육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 무궁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이런 가봉에 우리나라 기업들과 교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재 가봉 한인회장으로서 이들이 무사히 가봉 땅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해 도울 것이다.
 
 
 
‘선공후사’라는 좌우명을 실천에 옮기면서 따뜻한 리더십으로, 생소한 땅에서도 태권도에서 배운 인내와 강인함으로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성실한 마음가짐으로 가봉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박상철 사범은 가봉공화국에 태권도를 통하여 민간외교사절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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