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태권도 국가에서 규명, 진실로 인정하다!
ITF태권도 국가에서 규명, 진실로 인정하다!
  • 태권도타임즈
  • 승인 2010.08.2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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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F태권도가 국가에서 조사, 운영하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로 표기)에서 “태권도의 국제적 보급을 통한 국위선양 조사 결과 보고서”를 통해서 1960년대 이후 태권도 초창기, 최홍희를 주체로 활약한 ITF개척사범의 역할을 진실로 규명, 인정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실은 이미 2년 전(2008년) 진실규명이 확정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은 물론 태권도 관계자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1년이란 긴 시간동안 진화위가 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이미 WTF 최만식 차장, 강석재 홍보부장과 김운용 전 총재 등, 다방면의 제도권 태권도 경로를 통해서 면담, 조사한 사실이 밝혀졌다.

ITF(국제태권도연맹)태권도가 1996년 3월 22일 서울의 조선호텔에서 창립식을 한 후 정치적인 이유와 함께 WTF태권도에 가려져 오랫동안 태권도 역사에 사장되어 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차원에서 국가에서 인정, 규명한 ITF의 눈물겨운 진실은 어느 재미 태권도 원로의 노력으로 이루어 졌다.

위와 같은 결과를 이루어낸 주인공은, 이유선 사범(1942년생, 미국 휴스턴 텍사스 거주, ITF 개척사범)으로, 2006년 5월 2일 진화위에 위와 같은 내용을 신청하여 2년여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ITF태권도의 주체성을 인정받았다.
(이유선 사범에 관해서는 전화로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별도로 기재하기로 한다)

이유선 사범은 1950년대 최홍희가 만든 학생연맹(연맹, 현종명)에서 ITF를 시작한 장본인으로서 1060년대 홍콩, 네덜란드, 프랑스를 거쳐 ITF를 개척한 원로사범이다.
그는 ITF태권도가 국위선양과 해외화 과정에서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한 것을 정부의 여러 경로를 통해서 공론화 시키고 인정받으려고 노력했다.
국정원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접수되지 않는 것을 진화위에 접수, 결과를 받아낸 내용과 진화위에서 진실, 규명 결정된 과정은 아래와 같다.

-ITF 정부기관에서 조사, 연구하다-

2006년 5월 2일 이유선, 이준재 등은 진화위에 ITF(국제태권도연맹)를 창설한 최홍희와 신청인을 포함한 개척자 사범들이 해외 여러 지역에 태권도를 보급하는 등, 태권도의 국제적 보급과 국위선양에 기여한 사실에 대한 진실규명을 신청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화위에서는 1년이란 긴 시간동안 신청내용을 검토한 후 진화위의 소위원회인 “민족독립규명위원회”에서 2007년 10월 2일 38차 회의에서 조사개시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진화위에서는 태권도가 올림픽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등 국제적 스포츠로 비약한 데는 WTF(세계태권도연맹)의 역할도 있는바, 2007년 10월 16일 전위원회에서 WTF도 조사 범위에 포함시켜 직권조사를 실시하게 된다.

진화위는 진실규명 과제를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 태권도의 국제적 보급 현황을 확인한다.
둘째, 태권도의 국제적 보급을 통한 국위선양의 내용을 확인한다.
셋째, 태권도의 국제적 보급 과정 및 보급 주체를 확인한다.

-태권도 사범의 국정원 역할이 밝혀지다-

그리고 조사방법으로는 문헌조사와 더불어 국가기록원, 국사편찬위원회,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인터넷, 그리고 단체로는 태권도진흥재단, 한국국제협력단, 외교통상부, 문광부 등을 대상으로 했으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국가정보원에 해외파견 사범 관련 자료 요청을 하였지만 관련 자료를 보유하지 않음으로 통보 받았다.
그러나 1960년대 말 외무부(현 외교통상부), 중앙정보부(현 국정원)등의 정부 기관을 통해 사범들이 파견되어 태권도의 국제적 보급과 함께 해당국가의 군. 경 또는 특수요원의 교육을 맡았다고 조사되었다.

그동안 일부 태권도 사범들이 해외에서 국정원의 역할을 한 것을 두고 논쟁이 있었으나 이번 조사에서 밝혀진 바로는 국정원이 외무부 및 KOICA(국제협력단)의 명단에 국가정보원 직원이 일부 포함된 사실을 증언(시인) 했으나 정확한 명단과 자료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로써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태권도 사범의 국정원의 역할이 진실로 밝혀졌다.

그리고 진화위는 비교적 심층적으로 ITF와 WTF를 분리 조사 하였으며 각자의 역할을 분명하게 밝혔다.
ITF태권도는 1966년 창립당시부터 그 이전의 최홍희가 29사단장 시절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태권도 명칭을 제정하는 과정 등 그동안 연구 발표된 태권도 역사 부분에서 ITF의 진실이 상세하게 조사, 보고되었다.
WTF역시 진화위 조사에서 방대하게 실시되었으며 그동안 해외사범들의 역할과 현황이 자세하게 기록되었다.
진화위에서 조사한 ITF와 WTF의 과정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공개하면 ITF는 1966년 창설 당시 9개국 그리고 2007년 현 102개국의 유단자 1250만이고, WTF는 1973년 창설 당시 19개국 그리고 2007년 현 188개국으로 비교 조사 되었다.

-태권도 태동, 초창기의 홍보와 개척의 주역은 최홍희를 비롯한 ITF사범들-

그리고 진화위에서 내린 “태권도의 국제적 보급을 통한 국위선양”의 결론 중 태권도의 국제적 보급의 경로는,
-개인 진출
-태권도협회 및 연맹에서 파견
-정부기관 파견 이었고 이러한 경로를 통하여 해외 각지에서 태권도를 보급한 사범의 역할이 컸으며 국가 이미지 홍보에도 태권도의 역할이 지대한 것으로 조사 되었다.
그리고 ①1960년대 태권도 초창기 태권도 홍보와 개척자 사범 파견 등의 활동에는 최홍희가 활약한 ITF(국제태권도연맹)역할이 컸으며,
②1970년대 중반이후 태권도의 조직화, 체계화를 통한 저변확대와 적극적인 경기화에는 김운용이 활약한 WTF(세계태권도연맹)가 역할이 두드려졌고 아울러 정부도 태권도 관련 지원 사업 등을 통해 태권도의 국제적 보급에 기여하였음을 확인 했으며,
③국제태권도연맹을 창설한 최홍희와 신청인들(이유선, 이준재)을 포함한 개척자 사범들이 해외 여러 지역에 태권도를 보급하는 등 태권도의 국제적 보급과 국위 선양에 기여한 사실을 확인 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진화위가 조사를 시작한지 1년 뒤, 2009년 9월 9일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제 26조 에 따라 진실규명으로 결정 되었다.

 

글 정리: 정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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