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CA권법부 창무관2
YMCA권법부 창무관2
  • 태권도타임즈
  • 승인 2010.06.0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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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무관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한 전편에 이어서 창무관의 원로들의 태권도에 대한 솔직 담백한 방담을 지상 중계해 본다. -편집부

 

대담참석자

김선구 관장

김도영 (의학박사)

이우모 (전 서울 교육위원회 장학관)

성태경 (안기부 출신)

김호재(전국기원 연수원 학감)

 

 
<1958년 2월 9일 창무관 4회 성동동아2회합동진급심사회(1,2,3급)>태: 태권도 원로들이니 초창기 태권도 이야기 좀 해 주시죠.

김선구(이하 ‘구’): 그때는 모두 어려운 시절이라 다들 전철타고 다니기도 하고 걸어 다니면서 수련하곤 했지.

이우모(이하 ‘모’): 그때는 도장이 기간도장밖에 없어서 모두 각 도장으로 찾아다니고 수련비 마련을 못해 고초를 겪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도복을 살 돈이 없어서 그냥 아버지 광목으로 만든 옷을 도복처럼 입고 수련하는 등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수련하려는 열의는 대단하여 요즘에는 그런 열의를 볼 수가 없어 좀 아쉬워.

성태경(이하 ‘경’): 그때는 얼마나 엄격하게 수련했던지 관장님이나 선배들의 명령이면 죽을 시늉까지도 해야만 되는 분위기였어.

김도영(이하 ‘영’): 모서수련이라 해서 여름에는 도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땀을 흘리고, 겨울에는 모한수련이라 해서 맨발로 수련하기도 했는데 겨울에 맨발로 수련하다보면 마룻바닥이 얼마나 차갑던지 절로 발이 오그라들었지만 내색도 못했지.

구: 여름에는 또 어떻고!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비오듯하는데 기마자세(요즘은 주춤서기라고 하는)로 가만히 서 있는 벌을 받으면 그야말로 땀으로 목욕하게 되었지......그 덕분인지 요즘도 어지간한 더위는 쉽게 넘어가.

경: 그렇게 힘들게 수련해서인지 도장의 동료들은 친동기간 같은 정이 있었어. 군대의 전우애 같은 것이라 보면 될거야.

 

태: 초창기에는 연무대회가 많았다는데........

모: 많았지 목포, 상암(난지도), 마산, 제주, 등 안다닌 곳이 거의 없어. 그땐 도장의 명예를 위해 거의 자비로 출전했지.

구: 태권도가 경기화 되기 전에 각 도장끼리 경쟁적으로 지관을 세우고 그것을 통해서 도장의 세를 과시하던 시절이라 연무대회는 정말 각관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했어. 연무대회가 도장의 유일한 선전 기회였거든.

경: 57년도 일거야 아마........ 장충체육관에서 각 도장별로 연무대회를 하는데 그때는 각 도장별로 특색 있는 것을 들고 나와 정말 대단했어. 그때는 장충체육관이 지금처럼 돔이 없고 바닥만 마룻바닥이던 시절이지. 그다음에 필리핀 기술진이 와서 돔을 올렸을 거야. 우리나라 기술로는 못했어. 참 격세지감이 느껴지지........

구: 연무대회 할 때 형(품새)을 하기도 하고 호신술도 했는데 난 주로 호신술을 시연하는데 꼭 홍정표랑 했어. 둘이 잘 맞았던 모양이야.

모: 제주 갔을 때 형님(김선구)이 고생 많이 했잖아요

구: 그랬지, 물을 갈아먹어 그런 설사를 만나 3일동안 설사만 한 기억이나. 요즘 같으면 병원이라도 갔겠지만 그때는 병원이라곤 생각도 못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야.

 


<1958년 5월 11일 대한공수도무덕회제16회 승단심사회>태: 관 통합이후 협회에서 일을 하셨을텐데

구: 다른 친구들은 다 직장이 있었고 주로 내가 관여 했었지 경기이사로 재직하면서 경기규정, 해외사범파견규정, 심사규정 등을 만드는데 관여했어.

모: 전주에서 전국체전이 열렸는데 그때 처음으로 태권도가 정식종목으로 들어갔을 때 내가 성동고 선수들을 인솔해서 참가했는데 그때 형님이 경기장 만드느라 고생 했잖아요.

구: 그랬지. 마당에다 사방 8m의 선을 그어서 만들었지. 그때 이 친구(김호재)가 심판으로 참가했었지.

재: 형님(김선구)이 상장 등 공식 문서에다 붓글씨로 쓰고 그랬잖아요.

구: 그때 기획이사를 맡았는데 당시 인쇄 기술이 좋지 못해서인지 상장이나 단증, 표창 들 공식문서는 거의 수기로 작성했어.

 

태: 현재의 태권도와 그때의 태권도를 비교해 본다면

구: 태권도는 실전무도야. 내가 평생을 수련해온 태권도를 깍아 내리는건 좀 그렇지만 현재의 태권도는 내가 수련하던 당시보다 ‘도’라는 의미가 많이 퇴색해서 좀 아쉬워.

모: 타 무도보다 태권도가 ‘도’라는 의미가 더 퇴색한 것 같아. 요즘 단증 받은 사람들 보면 실력이 안되는데도 다 받아......... 그러면 단증이 무슨 권위가 있을 수 있겠어? 심사할 때 좀더 세심하고 정확하게 볼 필요가 있어.

 

태권도를 수련하던 당시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밝은 미소를 띠우며 신나하던 얼굴이 현재의 태권도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무거워지는 것은 원로들이 바라보았을 때 현재의 태권도가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평생을 가까이 두고 사랑해온 태권도의 모습이 보다 아름답게 보여질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 섞인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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