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기역사칼럼]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누구인가?
[윤태기역사칼럼]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누구인가?
  • 태권도타임즈
  • 승인 2014.07.1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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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호 윤태기 역사칼럼]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누구인가?
 
 
며칠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다녀갔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에 대해 너무도 모르는 듯 하여 우리와 관련된 지표들을 살펴보았다. 중국은 2010년에 일본을 제체고 세계경제대국인 G2가 되었다. 중국의 인구는 14억에 공산당원만 8천 5백만이다. 우리나라 인구가 5천 백만이니 비교가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수출 교역량을 살펴보면 중국 25~26%, 미국 16%, EU 15~ 16%, 일본 6%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이 2016년이면 G1이 될 것이라고 IMF는 예상하고 있다.
 
 
우리가 중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첫째, 중국은 짝퉁이 판친다,  둘째, 중국 사람은 게으르다. 셋째, 중국 사람은 더럽다 등이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게으르다면, ‘G2가 되기 위해서는 4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세계 경제학자들의 예상을 깨고 어떻게 G2가 될 수 있었겠는가. 우리가 그들을 알고 있는 것은 편견이고 일방적 생각이지 전체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을 제대로 알고 대응하면서, 진정한 이웃으로 그들을 대한다면 앞으로 중국은 우리 삶의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나를 알고 상대를 알아야 한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변하지 않는 3가지가 있다. 첫째, 민족주의, 둘째, 국가주의, 셋째, 인종주의 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그 과거를 되풀이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경제적 이유만으로 망각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역사를 망각한 민족은 미래가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이다.
 
우리는 몇 천 년의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지만 그 역사 속에서 크고 작은 외침을 1천여 번 받았다. 그 외침의 75%는 중국이었으며 나머지가 일본이다. 가까이는 병자호란, 임진왜란 등이 있으며 마지막에는 일국의 왕비까지 잃어버리는 치욕까지 겪었다. 그런 처절하고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역사를 경시하고 등한히 해버리면 다시 우리는 그러한 역사를 되풀이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태권도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태권도가 국기라 한다면 우리의 역사 속에서 우리 수련법이 태권도 안에 녹아들어가야 한다. 과거를 잃어버리면 우리의 정신과 수련법 또한 잊혀 지게 되어있다.
 
 

 
그림에서 보듯이 우리 역사 속에는 우리의 수련법이 연연히 살아 내려오고 있다. 문제는 그 누구도 역사를 잊은 듯 스스로 찾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안에는 건강의 원리와 함께 몸 안의 공력을 키우는 수련법들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는 선조들의 위대한 수련법을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고 있음에도, 태권도를 우리 고유의 무술이라 하면서도 정작 우리 것을 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중국에서는 심지어 태권도를 자기들의 것이라 주장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그래서 태권도를 지도하는 사범들에게도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며 그와 함께 자기발견이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가 지배한 우리 사회와 같이 태권도 사회도 돈만을 최고로 치고 있으며, 심지어 그 돈에다가 신의 권능을 부여하면서 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다보니 ‘나’ 아닌 모든 사람은 ‘나의 적’이라는 천민자본주의 사상이 태권도 사회를 휘감고 있다. 그 결과, 시합에 나가서는 상대를 배려하는 스포츠맨십 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했고, 그런 것들이 태권도 지도자 뿐 아니라 태권도 문화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 문화는 작금의 대한태권도협회 시합에서 빚어진 승부조작과 계체 부정, 서울시태권도협회의 승부조작 사건과 각종 비리들로 이어져 경찰의 수사까지 받게 되는 상황까지 만들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태권도 일선 도장 역시 자기 도장만을 생각한 나머지 타 도장을 정당치 않게 각종 비열한 방법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 도장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천민자본주의 논리가 작동되고 있다.
 
이러한 태권도 문화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 교육이 시급하다. 바로 인간의 발견이다. 그래야만 나 아닌 타인이 보이고 인간에 대한 존중이 생기게 된다. 인간의 가치를 알게 되면,  이 세상은 나만이 아닌 너와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가 만들어 지고 나의 기쁨이 곧 너의 아픔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야만 태권도 경기뿐만이 아니라 일선 태권도장의 문제도 엉킨 실타래를 풀 듯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 속에는 역사, 철학, 문화 등이 중추를 이루고 있으며 그 곁가지에는 정치와 경제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이루는 모든 총체적 문제는 인문학의 테두리 안에 넣을 수 있다. 태권도를 지도하는 모든 지도자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것은 태권도의 각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자기만을 위한 +α, +α 만을 주장 한다면 +α만을 늘리기 위해 모두를 적으로 돌려버리는 태권도의 문화체계 속에서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한 병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누구인가? 어떻게 사는 것? 이 올바른 가치관의 삶인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를 돌아봐야 한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탐구이며 인식이라고 한다면 태권도를 선택한 것이 나의 인생의 역사적 소임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그래야만 태권도와 함께 하는 나의 인생이 풍요로워지고 나의 민족에게 떳떳한 사람으로 존재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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