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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타임즈
  • 승인 2010.01.1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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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가 세계인의 가장 사랑받는 무도스포츠로 자리매김한지도 오래되었다. 태권도 보다 먼저 미주나 유럽에 소개된 가라데나 유도를 젖히고 괄목상대할만한 성장을 이루는 데는 수많은 태권인들의 노력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세의 뒤안길에는 태권도의 무도라는 측면 보다는 스포츠로서의 겨루기나 체력단련을 위한 목적으로 품새를 익히는데 더 중점을 두고 있어 많은 우려를 가지게 하는 측면이 있다.
태권도는 육체적인 수련과 정신적인 수련의 조화를 통하여 성숙된 자아를 실현하고 완성해 나아가는데 주안점을 둘 때 비로소 명실상부한 무도스포츠로서의 태권도가 세계인에게 매혹적인 모습으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육체적인 수련 한쪽 측면을 강조하는 것은 반쪽짜리 태권도로 태권도 발전을 저해 하는 요소로 작용 할 소도 있을 것이라 생각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태권도 정신은 태권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강조되고, 널리 알려지고,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덕목이라 할 것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태권도장의 정면에 태극기와 세계연맹기 바로 아래에 위치한 태권정신이라는 글귀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본 칼럼에서는 태권도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태권정신을 오늘날의 현실에 비추어 재조명 해 보는 기회를 삼아보고자 한다.
태권정신의 제일 덕목은 뭐라 해도 예의라 할 수 있다.
예의(禮儀)란 것을 사전적으로 정의 하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하는 존경심의 표현과 삼가야 하는 말과 몸가짐을 말하는데 이를 태권도에 접목시켜 보면 도장에 들어서면서부터 국기에 대한 경례, 관장, 사범에 대한 인사, 선후배간의 인사뿐만 아니라 도복을 가지런히 하고 띠를 격식에 맞게 메는 것부터 예의의 시작이라 할 수 있으며 관장이나 사범 역시수련생에게 사랑이 담긴 따스한 눈길로 맞이하며 인사에는 일일이 공손하게 응대 하여 수련생들의 마음속에서 존경심이 우러나게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근래에 들어 태권도를 수련 하면서 간편한 트레이닝 복장으로 수련을 하는 경우도 가끔 보이는데 이는 태권도와 도복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이며 또한 관장이나 사범들이 도장에서 도복을 입지 않고 지도를 하는 경우나 도복이 단정하게 정리 되지 않고 흐트러진 모습이 보이는데 이 또한 수련생들에 대한 예에서 한참 벗어난 일이라 할 것이다.
덧붙여 도장 차량을 운행하는 관장이나 사범이 도복차림으로 운행을 한다든지 수련생들이 도복차림으로 길거리를 뛰어 다니는 경우도 보이는데 이 또한 예의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관장, 사범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수련생들의 거울이 된다는 점을 명심하여 항상 절제되고 단정하며, 규범을 준수 하는 모습을 보일 때만이 수련생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고 이러한 것들이 갖추어 졌을 때 비로소 수련생들에게 예의에 대한 지도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태권도의 두 번째 정신으로는 염치를 들 수 있다.
염치란 깨끗한 마음으로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부끄러움을 느끼고 이를 고치려 하는 마음이다.
염치 있는 태권인의 마음가짐은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하며 남을 배려하고 자신의 맡은바 소임을 성실히 수행하는 마음자세라 힐 수 있는데 근래에 들어 일부 태권인들의 행태를 보면 자신의 선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기 보다는 상대방을 비난하고 폄하함으로서 상대적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파당을 지어 사생결단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염치를 모르는 행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며, 이를 타인의 탓으로 돌리고, 과장된 행동과 고상한 말, 그리고 해괴한 명분으로 자신을 정당화 하려는 모습은 참으로 염치없는 행위이며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태권도의 미래며 태권도의 발전을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며 자가당착의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태권도의 세 번째 정신은 인내와 극기이다.
인내란 어떠한 고통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뎌내는 마음을 말함이고 극기란 자기의 감정이나 욕심을 이지로 눌러서 이김을 말 하는데 혹자는 이 둘을 분리해서 말하기도 하지만 극기와 인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보고 하나의 정신수련의 덕목이라 분류해 보았다.
이는 인내를 통하지 않은 극기란 있을 수 없으며 극기를 위해 필수적으로 존재해야하는 수단이 인내라 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짧은 시간에 많은 변화를 야기하고 그 수많은 변화들은 가치관의 혼란과 더불어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이러한 난관들이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며 쉽게 좌절하게 만들고, 문명의 이기에 의존하려는 이타심과 게으름을 불러 오게 만든다.
이러한 시대에 태권도의 발차기, 지르기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수련을 통하여 인내심이 길러지고 이러한 인내심이 현실속의 각종 난관을 돌파하는 밑거름이 되어 새로운 도전을 위한 진취적 기상을 가지게 만들며 자신의 마음속에 깃든 갈등과 방황, 좌절과 이타심, 그리고 나약함을 이겨내는 극기의 길로 접어들게 되며 이 극기는 기나긴 인고의 터널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기성찰의 결과물인 것이다.
다음으로는 백절불굴의 정신이다. 이는 어떤 어려움에도 결코 굽히지 않고 나아가는 마음으로 불의에 대한 두려움과 주저함 없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나아가는 마음으로 자신보다는 우리를 생각하고 행동하며, 강자에 기대기보다는 약자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정의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태권인의 백절불굴의 정신은 작게는 내가 속한 조직, 크게는 사회를 맑게 정화하여 발전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위에서 개략적으로 살펴본 태권정신은 자기 수양의 방법이며 이를 통해 자신의 발전에 반드시 필요로 하는 구성요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적인 수련을 병행하지 않는 태권도의 수련은 건강을 위한 보건체조와 다를 바 없다고 본다.
지금 우리의 소중한 태권도가 양적으로는 엄청난 기세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내적인면(정신적인 면)에서는 양적팽창에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말해 스포츠로서의 태권도의 발전에 못지않은 무도로서의 태권도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큰 제방이 개미구멍 하나에 무너질 수 있고 천년 고목이 작은 벌레 한 마리에 쓰러질 수 있듯이 태권도가 스포츠적인면과 무도적인면의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지금의 태권도가 누리는 성세는 사상누각에 불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할 것이다.

<태권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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