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칼럼] 대한민국의 참된 무도인은 누구인가
[논설위원칼럼] 대한민국의 참된 무도인은 누구인가
  • 태권도타임즈
  • 승인 2014.08.0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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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칼럼]
대한민국의 참된 무도인은 누구인가

‘참 무도인(武道人)’이란… 무술실력이 뛰어나며,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고 바른길을 가는 인간이 된 자
 
 
 
누군가로부터 ‘당신은 참다운 무도인 인가?’ 하고 질문을 받는다면 ‘예!’ 라고 떳떳하게 즉답 할 수 있을까? 망설임 없이 곧바로 ‘예!’ 라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진정한 무도인이 갖는 깊은 의미를 오해하거나 아니면 ‘군자의 도를 깨우친 자’라고 봐야 할 것이다.
 
참된 무도인을 논하기 전에 먼저 ‘도’에 대해 알아봐야하겠다. ‘도’(道)는 길이라는 뜻으로, 의역하면, 마땅히 지켜야 할 이치를 바르게 행함을 말한다. 선비는 선비의 도가 있고, 무사는 무사의 도가 있듯이 모든 일에는 그에 걸맞고 합당한 도가 있는 것이다.
 
필자는 무술을 하는 자가 지키고 행해야 하는 올바른 ‘처세의 도’를 논하고자 한다.
 
언젠가 필자가 태권도장을 하면서 호신권법 연맹을 준비할 때이다. 어느 단체의 무예대회에 초청받아 참석한 적이 있었다. 평소 존경하며 호형호제하는 선배님께서 대회에 참석한 단체장들에게 필자를 무도인이라고 소개하였다. 아마 그 선배는 당시 태권도 관장의 명함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예우차원에서 무도인이라는 예칭을 해주었다고 본다. 당시에는 무술만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도인으로 불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무도인 임성학입니다”하고 인사를 나누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부끄럽고 경솔한 처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상적으로 무술만 배운 자라면 모두 무도인으로 부르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개념이다. 사전적의미를 살펴보면, 단순히 무술을 배운자는 ‘무인’(武人)이고, 무술실력이 뛰어나고 인간이 된 자. 즉, 무인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고 바른길을 가는 자를 일컬어 ‘무도인’(武道人)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무인’은 인간성과 무술실력의 숙련 여부와 관계없이 무술을 수련한 자라면 누구나 무인이라 할수 있는 반면, ‘무도인’은 무술이 뛰어난 자들 중 ‘도’에서 요구하는 ‘인격수양이 갖춰진 바른 인성과 윤리와 도덕관념이 투철하고, 바른길을 행하는 자’ 즉, 모든 면에서 세인들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는 인간이 ‘바로 된 자’를 ‘참된 무도인’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술계’에서 흔히 말하는 ‘무인’과 ‘무도인’에 대한 호칭이 갖는 깊은 뜻이 무엇인지 나름의 정리를 하고자 한다.
 
첫째, ‘무인’ 중에도 두 종류가 있다. 먼저 무술 실력으로는 고수라 할 만큼 수련되지 않았지만, 무도인의 ‘도’에서 요구하는 인간성과 선을 행하는 것으로 바른 인성을 갖춘 올바른 무인이 있는가 하면, 무술실력여부에 상관없이 교만과 아집과 비인격자인자로서 신의와 신뢰성을 상실하고 이해타산에만 눈이 먼 비겁하고 야비한 소위 ‘양아치’라 불리는 무인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인은 ‘무도인’이라는 영광스런 호칭을 부여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태권도, 합기도, 검도 등과 같은 분야별 명칭에 ‘도’자를 붙인 무술을 하는 자가 도에 반하는 비양심적, 비윤리적, 비도덕적, 비인격적 행동 등으로 신뢰성이 결여되어 무술인으로서 지탄을 받는 어떤 경우라도 ‘도’자를 붙여서는 아니 된다고 본다.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가령 태권도를 하는자가 비인간적 행실로 지탄을 받는다면 그 자는 ‘태권도인’이 아닌 단순히 태권도 프로그램을 배우기만 한 ‘태권인’이라고 칭해야 할 것이다. 물론 타 무술인도 예외는 없다. 
 
셋째, ‘참된 무도인’은 다음 십계 항목 정도는 갖춰야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본다.
하나, 항상 도복을 가까이 하고 즐겨 입어야 한다. 둘, 무술에 대한 열정과 수련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셋, 무술에 대한 이해와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넷, 상대를 배려하고 인정 할 줄 아는 포용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 다섯, 사제지간의 신뢰와 바른 교육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 사범은 지도자로서의 자세, 제자는 배움의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여섯, 스승과 제자, 동료와 선, 후배 간에 존경과 사랑, 신의를 지키고 겸손해야한다. 일곱, 충효정신이 투철하고, 봉사와 정의로운 정신을 갖춰야한다. 여덟, 무도인의 약속은 천금과 같다. 어떤 약속이라도 반드시 지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한다. 아홉, 남을 기만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비겁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열, 재화욕과 이해타산에 젖어 무도인의 정신과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넷째, 진정한 무도인은 무술의 고수를 전제로 하기에 타의 무술을 배척하고 자신의 무술만이 최고인양 편견과 아집을 부려서는 안 된다.
 
무술은 결국 ‘대련의 기술’이다.
 
대련의 기술에는 거리에 조절되어 대응해야한다. 다시 말하면, 대련에는 ‘삼대원칙’이 있다. 원거리일 때는 ‘발기술’이 우선이고, 근접 시에는 ‘손기술’이 우선이고, 밀착 시에는 즉 ‘제압술’이 우선이다. 가령, 건설에도 종합면허가 있고, 단종면허가 있듯이 무술도 ‘종합무술’이 있고, ‘단종무술’이 있다.
 
예컨대, 태권도, 합기도, 검도, 복싱, 유도 등 자신들이 하고 있는 무술이 종합무술인지 혹은 단종 무술인지를 구분해야한다.
 
일반적으로 보면, 비록 뛰어난 손기술을 가졌다고 해도 발기술과 손기술이 혼합된 무술을 당해내기가 어렵고, 반면에 발기술이 뛰어난다 해도 손기술과 발기술, 제압 술을 동시에 종합적으로 구사하는 고수에게는 당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무술의 정의는 종합무술이 진정한 무술이라고 말할 수 있고, 냉철히 말하면 단종무술의 고수라고 해도 여기서 말하는 진정한 무술의 최고수로 인정받기에는 무리라고 보기에, ‘진정한 무도인’으로 평가 받을 수가 없다고 본다. 덧붙여 맨손종합무술은 검을 필요로 하고 검술인은 맨손종합무술을 필요로 한다. 이는 검술인이 검을 놓치는 경우 맨손으로 대적해야하기에 맨손종합기술을 갖추지 않고는 아니 되고, 맨손무술 역시 검을 쥔 자에게 맨손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빠진다면 역시 무술의 최고수라고 말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무술의 최고수를 전제조건으로 하는 진정한 무도인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무술인에게 부여하는 영광된 참된 무도인의 호칭은 최소한 검과 맨손종합무술의 ‘결합체’를 갖춘 자만의 ‘전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에서 무술최고수라고 칭하는 자들 중에 진정한 무도인의 호칭에 걸 맞는 자격과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무술의 깊이는 끝이 없고, 비록 무술의 고수라도 덕망과 품격이 갖춰지지 않으면 ‘참 무도인’으로서 영광과 존경을 받지 못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끝으로 나는 무인인가? 무도인 인가? 스스로 반문하고 고민하면서 참된 무도인이 되기 위해 수련과 열정을 불사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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