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기 역사칼럼] 태권도의 기공과 의학
[윤태기 역사칼럼] 태권도의 기공과 의학
  • 태권도타임즈
  • 승인 2013.07.2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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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의 기공과 의학


 
필자는 서울에서 머나먼 대구 경산의 영남대에서 석사(체육학), 박사(이학박사) 공부를 하였다. 대학원 공부를 위해 기차를 타고 다니는 시간은 필자에게 많은 사색의 시간이었다. KTX가 개통된 첫해 어느 날, KTX 안 TV에서 우연히 때밀이 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한 청년이 어느 사우나탕의 때밀이 보조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는 일이 사우나탕의 청소와 때밀이 뒷일들이었다. 그러다 휴일을 맞은 어느 날, 이 청년은 청계천의 고서적 가게를 구경하다 누렇게 변한 허름한 경락책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 이 청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섬광과 같은 빛을 발하며, “맞아,  바로 이거야” 하는 환호와 함께 그 책을 사게 된다.
 
 그는 옥탑방으로 돌아와 곧바로 목재상에서 나무를 구입하여 사람이 누울 수 있는 목욕용 테
이블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내에 나가 부드러운 마네킹을 구입하여 목욕 다이 위에 눕히고 경락책을 보며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때밀이 타월과 하나 되어 마치 무술이라도 하듯 춤을 추며 때밀이 연습에 매진한다. 마무리로는 마네킹의 경혈점을 찾아 지압을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필자의 뇌에서는 ‘아니 때밀이도 저렇게 자신의 일에 몰두하며연구 하고 있는데, 태권도를 지도하는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자각이 일어났다. 그 후 필자는 더욱더 깊숙이 몸을 알고자 하였다. 한편으로는 필자가 수련하는 태권도가 국기(國技)라 한다면 우리의 전통 속에서 맥을 찾아야 한다는 방향을 설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까지 필자가 배운 것은 서양의 신체관(身體觀)이었으며, 이것을 계기로 동양의학에 관심을 가지고 더욱 우리의 것을 찾게 됐다. 그래서 찾은 것이 우리민족과 함께 면면히 이어져 온 선도기공(仙道氣功)이었으며, 그 바탕은 한 철학의 ‘홍익인간 이화세계’ 라는 것이었다.

 그 후 삼원오행(三元五行)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의학에서 외면한 한방기공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국제뇌교육대학원에서 국학박사를 받게 되었다. 지금도 필자는 도장 뿐 아니라 다양한 기관에서 외공위주로 수련되어지던 태권도에 한의학의 여러 원리와 내공을 접목한 새로운 수련법으로 다양한 계층(남・여・노・소)에 태권도를 지도하고 있다.

 송나라 사숭(史崧)이 쓴 『내경(內經)』「영추(靈樞)」편 서문에 보면 “사람의 자식으로서 의서를 읽지 않는 것은 불효보다 심하다.” 라고 하였으니, 학문하는 사람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과목이 바로 의학(醫學)이라 하였다. 더욱이 사람의 몸을 다루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의학은 떼려야 뗄 수 없다.

  동양의 의학을 중국은 중의학(中醫學)이라 하고, 우리는 허준 선생이 일찍이 동의(東醫)라고 규정하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한의학(漢醫學)과 한의학(韓醫學)을 혼용하고 있다. 이에 1986년 우리 고유의 의학에 대한 자각이 일
어나 중국을 의미하는 한나라 ‘한(漢)’에서 우리나라를 의미하는 나라 ‘한(韓)’자를 사용하여 한  의학(韓醫學)으로 표기하기로 하였다.

 
선가(仙家)나 도교(道敎) 또는 불교(佛敎) 등의 종교에서 체계를 세운 각각의 종교의학의 지엽이 있기도 하지만, 그 원리가 태극(太極)과 삼원오행(三元五行)의 변형인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 그리고 역(易)에 근거한 수리론(數理論), 기상환경과 관련된 오운육기론(五運六氣論)을 근간으로 하는 동일한 원리에 근원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동양의학의 범주에 속할 뿐이다. 이러한 동양의학은 허준 선생의『동의보감(東醫寶鑑)』「내경」에서 “상고시대 성인의 가르침이다[上古聖人之敎下也]” 라고 하였고, 『한서(漢書)』「예문지」에서는 의경(醫經)과 경방(經方), 방중(房中)과 신선(神仙)을 방기략(方技略)에 나란히 나열하고 있다. 이는 신선방기(神仙方伎)에서 유래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의학에서 무병(無病)과 양생(養生), 연년익수(延年益壽)하려는 목표는 신선가(神仙家)에서 신기(神氣)를 연단하여 장생불사(長生不死)하려는 목표와 결국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병 고칠 의(醫)라는 글자를 파자해 분석해 보면, 경혈지압과 화살을 가리키는 의(医) 자, 창이나 침을 암시하고 있는 수(殳) 자, 술통과 연금술을 나타내는 유(酉) 자로 이루어 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의(醫)자의 의미는 지압(마사지)이나 침술 또는 연금술의 걸작인 술이나 탕액 등으로 질병을 다스리는 치료법을 상징하고 있다. 본래 도(道)는 사람의 인체에서 영대(靈臺)라고 하는 머리로 가정한다면, 학(學)이란 그 머리에 붙어 있는 머리털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으므로 천하의 학문은 당연히 모두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무예나 기공에서의 의학은 피할 수 없는 필수과목이 되는 것이다. 
  
인체에 흐르는 에너지인 정・기・신(精・氣・神)을 논하는 학문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의료에서의 질병의 진단과 침구치료에서 필수로 이해하여야 하는 경락과 경혈은 무예와 기공의 수련
에서는 내경(內勁)의 통로로서 운기(運氣)와 점혈(點穴)에서 명료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인체의 오장육부(五臟六腑)에 관한 장부(臟腑)는 무예와 기공의 내공수련에서 필수적으로 밝게 알아야 하는 내용이며,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을 비롯한 십이정경(十二正經)과 기경팔맥(奇經八脈), 근육과 골격에 관한 내용은 본래 그 자체가 고대에는 무예 학문에 속하는 영역이었다. 

 의학은 인간의 심신을 계발하여 선인(仙人)이 되는 상승의 학문이 인체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하승학문으로 내려간 것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의학을 ‘상고시대 성인의 하교(下敎)’ 라고 하였듯이 의학의 핵심에 해당하는 정기신론(精氣神論)과 경락경혈론(經絡經穴論), 그리고 장부론(臟腑論) 등은 본래 무예와 선가(仙家) 학문의 경계에 있었던 분야였다.
 
필자가 주장하는 변화된 태권도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역사(歷史)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의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에 그침 없이 오가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더욱이 태권도가 국기(國技)라 당당히 말할 수 있으려면 우리의 학문인 ‘국학(國學)’속에서 그 철학을 찾아내고 수련법 또한 우리의 ‘국학’에서 찾아야 한다. 한국학(韓國學)이 아닌 왜래 문화가 들어오기 이전의 순수한 우리 학문인 ‘국학’에 그 답이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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