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규 칼럼>③ 豺兮狼兮 又誰戕兮 시혜랑혜 우수장혜
<박완규 칼럼>③ 豺兮狼兮 又誰戕兮 시혜랑혜 우수장혜
  • 태권도타임즈
  • 승인 2012.11.1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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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 칼럼>③

승냥이야 이리야, 누굴 또 죽이려 하느뇨?

“승냥이야, 이리야/ 우리 송아지 채갔으니/ 우리 염소만은 물지 말라/ 장롱에는 속옷도 없고/ 횃대에는 걸린 치마 없다네/ 항아리에 남은 소금도 없고/ 쌀독에는 남은 식량도 없도다/ 큰 솥 작은 솥 모두 빼앗아가고/ 숟가락 젓가락 다 가져갔으니/ 도둑놈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못된 짓만 하느냐/ 사람 죽인 자는 죽었는데/ 또 누굴 죽이려느냐. (豺兮狼兮 旣取我犢 毋噬我羊/ 笥旣無襦 椸旣無裳 甕無餘醢 瓶無餘糧/ 錡釜旣奪 匕筯旣攘 匪盜匪寇 何爲不臧/ 殺人者死 又誰戕兮)”

다산 정약용의 ‘시랑(豺狼)'이라는 시의 첫째 장(章)에 소개된 글이다. 1809년은 기사(己巳)년인데 다산은 그 전 해에 강진읍에서 도암면 귤동 마을의 뒷산에 있는 다산초당으로 옮겨와서 유배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봄부터 가뭄이 들어 들에는 푸른 풀 한포기 없이 산야가 벌겋게 타들어 가고 있어 굶어 죽는 사람이 즐비하고 닥치는 대로 이고 지고 정든 고향을 떠나 살길을 찾아나서는 사람이 길을 메우던 시절이었다.

이런 가뭄보다 더 무섭고 혹독한 것이 바로 관리들의 탐학질이었다. 이 ‘시랑'이라는 시의 해설을 읽어보면 그 때의 사정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갑의 마을 아무개가 을의 마을 아무개와 장난짓을 하다 을의 아무개가 죽고 말았다. 관에서 이 사실을 알고 조사를 온다면 두 마을이 쑥밭이 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갑 아무개에게 자진하기를 권하자, 마을을 살리기 위해 그는 그냥 자살하고 말았다.

그 뒤 그 사실을 알아낸 관리들이 두 마을의 죄상을 캐면서 돈 3만 냥을 뜯어갔는데, 그 돈을 마련하느라 두 마을에는 베오라기 하나 곡식 한 톨 남은 것이 없어 그 지독함이 흉년보다 심했다는 것이다. 승냥이나 이리처럼 싹쓸이하는 관에 분노한 백성의 모습을 다산은 생생하게 읊었다.

더 기막힌 대목은 “관리들이 돌아가는 날 두 마을 사람도 다 떠나가 버리고 오직 부인 하나가 남아 군수에게 그 사정을 호소했더니 군수가, ‘네가 나가서 찾아보아라'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 마지막 군수의 답변이 그 시절 백성이 당하던 고통이 얼마나 컸던가를 웅변해주고 있다.

정확히 203년의 시공을 뛰어넘은 시계 2012년 11월 태권도계에 그 때 시혜랑혜 우수장혜(豺兮狼兮 又誰戕兮: 승냥이야 이리야 또 누굴 죽이려 하느뇨)에 다름아닌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으니 아연실색할 일이다. 대한태권도협회 산하의 가장 큰 지부인 서울시태권도협회의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 임직원들의 비위(非違) 행각이 바로 그럴진대.

최근 ‘태권도를 사랑하는 지도자연합회’가 국가권익위원회와 문화관광체육부, 대한체육회, 서울시의회 등 관계요로에 제출한 진정서에 따르면 우선 서울시협회의 임윤택 회장은 공금횡령 및 배임수재 등 본인이 저지른 비리행각에 더해 직권을 남용해 협회를 족벌체제로 만들고, 추종세력인 임원들을 선동해 25개 구지회의 선거에 직접 관여하는가 하면, 심지어 대한태권도협회 산하 시도협회와 각 연맹체 내정에도 간섭하고 그들 선거조차 개입하며 자신의 주구 또는 수하단체로 만들려고 획책하는 등 기만적 전횡을 일삼고 있다.

특히 서울시협회의 회원으로서 승(품)단 심사비, 대회참가비 등으로 매년 50억원 상당의 돈을 벌어다 주는 일선 태권도장 관장과 사범들을 위한 활성화 방안이나 지원책을 모색하기는커녕, 불만표출이 되지 않도록 언로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온갖 협박과 공갈로 죽으라 쥐어짜기만 하는 등 되려 회원들을 탄압하고 있는 형국이다.

진정서에는 이 밖에도 20여 가지의 비위사실을 적시해 놓고 있는데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 같은 일련의 비리와 부정, 전횡을 은폐하기 위해 고액의 고문변호사 5명으로 구성된 전담팀까지 꾸리고 있을 정도라니 가히 부패철옹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2년도 어언 달포밖에 남지 않았지만 태권도계는 여전히 서울시태권도협회 같은 비위단체의 탐학질 때문에 희망을 상실해 버리고, 시름에 빠진 일선 태권도장 경영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가뜩이나 경제침체로 폐업이 속출하는 등 관장들의 상심은 커져만 가는데도 서울시태권도협회 집행부는 너나없이 기득권을 거머쥐고 잉여예산을 권력연장의 수단으로 남발하고 있음에야.

탐학질에 다름아닌 몹쓸 짓으로 해마다 회원들이 벌어다 준 혈세(?)가 줄줄 새어나가고 있다. 온전한 일선 태권도인들은 도탄에 빠져 있고 승냥이와 이리가 들끓고 있으니 이게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이던가. 다산이 환생하여 ‘시혜랑혜(豺兮狼兮)' 노래를 부르며 혀를 찰 일이건만 이 노릇을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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