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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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타임즈
  • 승인 2010.02.0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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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면서 우리만의 태권도가 아닌 세계인의 태권도이고 국내는 물론 외국의 여러 대학에서 태권도학과가 개설되고 있고 태권도의 역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현실에서 우리가 태권도의 역사의 정립에 등한시하고 고대기원설, 화랑기원설, 가라데 유입설 등 많은 학설이 주장되고 있으나 어느 것 하나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없는 실정이다. 중국에서는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태권도마저도 자기네들 것이라고 주장 하는 것도 우리가 태권도의 역사를 정립하는데 게을리 한 탓이라 생각되어 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태권도타임즈는 창간특집으로 태권도의 역사에 대한 여러 가지 사료들을 소개하여 태권도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일조 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재 캐나다 사범인 정순천 사범의 기고문을 2회에 걸쳐 연재로 싣게 되었으며 본문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으나 기고자의 원문을 그대로 싣는다. ㅡ 편집부ㅡ

엄운규 전 국기원장과 태권도史-1

-생존하는 태권도 역시 엄운규 전 국기원장-

태권도사에서 생존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 있다면 필자는 서슴없이 엄운규 전 국기원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엄운규 원장은 태권도 태동기라고 할 수 있었던 5개관(청도관, 지도관 ,무덕관 ,창무관 ,송무관)관장들과 함께 최홍희ITF창시자와 관계는 물론이며 얼마 전까지 국기원장직을 맡았던 태권도사의 산증인이다. 필자가 엄운규 원장을 처음 만난 것은 1997년 국기원 부원장실(당시 엄운규는 국기원 부원장)에서였다.

당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대한태권도협회”창립 사진을 가지고 사진 속 인물 중에 한명인 엄원장을 만나려 간 것이다.

1972년 이후 세상에 사라졌던 ITF태권도는 1997년 필자가 부원장실을 찾을 때까지만 해도 철저하게 사장되어있었다.

사진속의 역사를 엄원장한테 질문했을 때 엄원장의 표정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태권도역사의 논쟁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지만 1997년과 지금은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은 사실이다. 30년 이상, 아니 영원히 묻혀버릴 것 같았던 진심들이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너지고 밝혀지고 있다.

역사의 기록은 권력을 쟁취한자의 것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이제 옛말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아이오와 주에서 태권도개척자로서 성공한 태권도타임즈 정우진회장으로부터 제공받은 청도관 초대 이원국관장의 앨범을 살펴보면서 필자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태권도사에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앞서 언급한 엄운규 전원장의 태권도 태동기 당시 행보들이다.

-청도관과 소년시절 엄운규 원장-

청도관은 태권도 태동기전 가장 먼저 국내에서 개관한 태권도역사의 중심이다.

1944년 해방 전부터 당수도란 무도명으로 국내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이원국 초대관장의 앨범 속에는 청도관 창관 기념사진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단기4279(1946년)에 실시한 제 2회 승급심사에서 엄운규원장을 비롯한 태권도사의 중요한 인물들이 함께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수도 청도관2회 심사기념 단기 4279년 11월 10일-

(앞줄에 앉아있는 인물 중에는 놀랍게도 그동안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던…창무관 윤병인관장과 조선연무관 전상섭관장의모습이다.앞줄왼쪽부터, 윤병인 창무관장, 전상섭 조선연무관장, 이원국 청도관장, 그리고 우측에 노병직 송무관장, 그옆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무덕관관계자로 추정된다)

필자는 위 사진을 살펴보면서 두 가지 새로운 사실을 찾을 수 있었다.
첫째는, 1946년 11월 10일 기념한 위 청도관 심사 당시 참가한 인물들이다.

두 번째는 소년시절의 엄운규원장의 등장이다.

사진 속에는 이원국관장 뒤 우측이 엄운규 원장이다.

같은 날 다른 각도에서 사진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들어난다.

사진속의 엄운규원장은 소년티를 벗어나지 않았다.

바꾸어 말하자면 엄운규원장의 무력이 어느 정도 일찍 시작했는지를 짐작 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청도관자료를 면밀히 살펴보면서 필자는 엄운규원장의 빛나는 처세술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이원국관장의 사진 속에는 늘 가까이서 함께 했으며 다음 편에 소개한 사진과 내용(청년 엄운규)을 보면 확연히 그의 자리가 드러난다.



-위사진 확대한것 : 이원국관장뒤 우측 엄운규-(사진)

다음편에는 청년 엄운규원장과 태권도사 핵심인물들의 초창기 활동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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