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용 '세계스포츠계 거목' 타계
김운용 '세계스포츠계 거목' 타계
  • 태권도타임즈
  • 승인 2018.01.2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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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세계스포츠계 거목’ 타계





태권도의 올림픽 입성을 통한 세계화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김운용 전 세계태권도연맹 총재가 10월 3일 별세했다. 향년86세.

고인은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별다른 불편없이 사무실에 출근하는 등 일상적인 활동을 이어왔다. 그러다 별세 하루 전인 2일 오전 몸 상태가 안 좋아 병원에 입원했고3일 오전 조용하게 눈을 감았다. 추석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고 김운용 총재는 태권도를 넘어 한국 스포츠가 배출한 최대의 인물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활동하며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포함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31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면서외교관의 꿈을 키웠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군인으로 참전했고 영어실력이 출중해 미국보병학교로 유학까지다녀오면서 우수한 장교로서도 인정받았고 박정희 정권 시절 외교관으로도 활동했다.

1971년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을 맡은 이후, 태권도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한 고인은 태권도 중앙도장으로서 설립된 국기원의 초대 원장을 역임했고, 1973년에는 세계태권도연맹을 설립을 주도하고 초대 총재를 맡아 태권도 세계화에 본격적으로 힘을 기울였다.

1986년 IOC 위원으로선출된 이후, 대한체육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국제스포츠연맹기구(GAISF) 위원장, IOC 수석 부위원장 등을 지내며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200년 시드니올림픽 태권도 정식종목화 및 남북한 동시 입장 성사 등 국제스포츠 역사에서 획을 긋는 활동을주도했다.

그러나 2001년 IOC위원장선거에서 자크 로게에게 패배한 이후, 2003년 체코 프라하에서 있었던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투표과정에서는 강원도 평창의 유치를 방해했다는 구설에 휘말리면서 국회 청문회에까지출석해야 했다.

2004년에는 세계태권도연맹 등의 운영 과정에서 공금을 횡령한 혐의등으로 구속기소됐고, 이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국기원 원장 등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태권도를 포함해 체육계 활동 일선에서 물러났다.

김운용 전 총재에 대해서는 공과 과에 대한 지지와 비판이 공존한다. 독선적이고제왕적인 운영으로 태권도계의 비리와 분열을 방조 내지는 조장했다는 비판이 있는 반면 올림픽 입성을 통해 태권도를 세계적인 스포츠로 만드는데 누구도할 수 없었던 기여를 했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고인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강연, 저술, 인터뷰 등 외부활동에 적극적이었고 특히 오는 10월 28일부터는 고인의 이름을 딴 제1회 '김운용컵 국제태권도대회'를 준비 중이었다.

고인의 측근들은 건강상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고인의 예상치 못한 죽음으로 황망하고 당황스러운 감정을 겨우 추스리고있는 상황이다.

3일 현재, 고인의 유족들이외국에 있어 구체적인 장례절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빈소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 조문은 5일부터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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